애프터눈 티. 향긋한 홍차와 트레이에 층층이 쌓인 티푸드를 앞에 두고 기분이 좋아지지 않기가 더 어렵다.
그러나 인당 몇 만원이 넘어가는 가격, 최소 2인부터 가능해서 같이 갈 사람을 구해야 하는 어려움, 미리 예약하는 수고로움 등 여러 이유로 항유하기 쉬운 문화는 아니라 '같은 돈으로 뷔페나 엔트리급 오마카세를 가고 말지...'라는 생각이 들고 만다.
서울에 있을 땐 숙대 근처에 종종 가는 곳이 있었는데 수원에 이사온 뒤론 전술한 이유들로 우선순위가 밀려 1년동안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그런데, 수원에 정말 괜찮은 티룸이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상호명은 '16세기 티하우스', 광교 근처에 있었는데 집에서부터 교통편이 나쁘지 않았다. 가격은 인당 39000원.
가게에 들어서면 압도될 정도로 많은 티웨어들이 있는데 많은 수가 웨지우드나 앤슬리 등 고가의 제품이라 더더욱 놀라웠다. 밖에서 보기엔 넓어보이지 않았는데 가게가 지하까지 있어서 엄청난 넓이를 자랑했다.
예약 단계에서도 원하는 티웨어를 고를 수 있다. 티팟과 티컵부터 모든 플레이트까지 같은 종류로 나온다.
고가의 티웨어는 예쁘다고 써볼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 부분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늘 보던 꽃무늬에서 변화를 주고 싶어서 특이한 걸 골랐다. 실물의 색감이 너무 예뻐서 잘 골랐다고 생각했다.
테이블 위에 수백만원 어치 식기가 있는 건 예쁘고 좋긴 한데 한편으로 살 떨리는 경험이다. 깨먹으면 큰일이다. 티하우스에서 건배는 절대 금지다.
저 티팟 하나만 아무리 적게 잡아도 50만원은 한다...
홍차는 믿음과 신뢰의 웨딩임페리얼을 주문했다. 밀크티로도 훌륭하다.
주문한 홍차가 나오면, 점장님이 맛있게 먹는 법도 알려주신다.
차를 따를 땐 뒤쪽에 살짝 보이는 채에 걸러서 티컵의 반 정도 오게 따른다. 처음 따르는 몇 잔은 맛이 좋지만 나중 갈수록 찻잎이 과하게 우러나서 써지는데, 이때부터는 우유를 살짝 섞어 밀크티로 즐기면 된다.
39000원이면 애프터눈 티 치고 그리 비싼 편은 아닌데 티푸드의 양이 상당하다.
1단의 샌드위치만 먹어도 가벼운 식사가 될 정도, 거기에 스콘, 마카롱, 과일, 심지어 조각 케이크까지 올라간다.
1단의 샌드위치는 상당히 맛있지만 오이가 들어가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을 것 같다. 미리 빼달라고 하면 빼주실지도? 2단의 스콘은 두말할 필요 없이 엄청 맛있다. 대신 3단의 디저트들은 다른 곳에서 사온 느낌이라 무난무난했다. (직접 만들기 난처한 디저트들이긴 하다)
양이 무지 많아서 배부르게 먹고도 남은 마카롱은 따로 포장해달라고 말씀드렸는데, 흔한 일인지 준비된 종이박스에 깔끔히 포장해주셨다.
이 티룸의 또 다른 장점이 있는데, 라멘 매니아로서 인정하는 수원 최고의 라멘집 '도이라멘'이 바로 근처에 있다는 것.
도이라멘에서 토리파이탄 라멘을 먹고, 16세기 티하우스에 들러서 홍차에 스콘을 곁들이면 훌륭한 주말이 될 것 같다. 여유 있을 때 종종 방문하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