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우리반 부회장은 키도 크고 운동도 잘 하고 공부도 잘 하고 성격도 좋은 우등생이었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피구를 할 때 그 아이가 크게 활약하던 모습, 단상 앞에 나서서 자신 있게 발표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긴 시간이 지나 고등학교 2학년 겨울, 그 아이를 목동의 어느 종합학원에서 다시 마주쳤다.
나는 홀린 듯 그 아이에게 말을 걸었고 우리는 놀랍게도 말문을 트자마자 꽤 친해졌다.
그 아이는 우등생의 탈을 쓴 겉모습과 달리 긍정적인 또라이였다. 공부하기 싫다고 징징대거나, 사실 덜렁이라 모의고사에서 실수가 잦다거나, 갑자기 '진격의 거인'에 푹 빠져서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하는 등 인간미가 넘치는 아이였고 그 점이 나와 잘 맞았다.
우린 주말마다 같이 목동을 누비며 힘겨운 고3 수험생 생활을 서로 의지했다.
대망의 수능.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둔 나와 달리 그 아이는 평소보다 실수가 많아,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연세대에 합격하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연세대에 온 건 나였다.
이후로 각자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느라 연락을 못 한 채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연락하기 머쓱한 관계가 되었지만... 만약 함께 연세대에 올 수 있었다면 오래도록 친하게 지냈을까?
인생에 만약은 없으니 별 의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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